MBTI 검사 결과가 혈당수치보다 더 자주 변한다?
성격 형성기와 중년 이후가 아니라면 MBTI 유형은 거의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물며 식전과 식후에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검사 결과가 혈당 수치보다 더 널을 뛴다면, 진지한 자기 점검이 필요합니다.
“T인 와이프랑 살았더니 INFJ에서 INTJ가 되었다.”
“일년 내내 거짓말 일삼는 남친이랑 각을 세웠더니 ISFJ였던 내가 ESTJ가 되었다”
“평소의 나는 ESFP이지만 전략을 짤 때의 나는 INTJ이고 현장에서의 나는 ENTJ이다. 나는… 카멜레온이다. 나는…. 박스에 갇히지 않는 인간인 것이다!”
“나이가 먹으며 현란한 언변과 기획력이 부질없다는 걸 깨달으면서 나는 그쪽 ‘성향’이 사라졌다, 그렇게 난 N에서 S로 변하게 된다.”
(위인터넷 상 흔한 신화들 - 성격 검사'결과'의 변동성을 성격의 변화 근거로 삼거나, '태도/성향'을 성격과 등치시키는 치명적 오해.
융이 제시한 참된 유형에 달하기 위해서는 3개의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MBTI라는 도구의 내재적 한계, 특정 MBTI 검사지의 품질, 검사를 하는 나 자신입니다.
1️⃣ MBTI자체의 내재적 한계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대표적인 건 Myers-Briggs 모녀 이래로 융의 유형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려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인위성들) 무거운 논점들은 여기서는 다루지 않을 겁니다. 어디까지나 특정 현상에 대한 논평이 목적이므로, 오늘 이 자리에서 언급할 만한 것은 결국 3번과 연결됩니다. 바로 ‘자기 보고식 검사의 한계’입니다. 3에서 논하겠습니다.
2️⃣ 두 번째 장애물은 검사지의 품질. ‘완전무결’과는 거리가 먼 MBTI검사지를 한 번 더 꺾은 것이 온라인에서 애용되는 16뻬르소날리티(가칭)란 간이 검사입니다. 검사 결과가 오락가락한다고 토로하는 사용자 수가 꽤 많다는 점, 그리고 대놓고 융의 기능론을 배제한 점이 최대 결점입니다(이것은 사이트에서도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융의 기능론은 계량이 어려워 배제했으며” 그 대신 옆동네 검사(Big5)에서 쥬스를 얻어다 좀 섞었다고 대범하게 자백합니다. 선제적 고백은 좋은 전술이지만 결점은 결점입니다.
3️⃣ 세 번째 장애물은 검사지를 마주하고 ‘자기 보고’를 해야 하는 나 자신입니다. 자기보고식 포맷의 특징상, 내 성격 표지들을 스스로 판정해야 하므로 검사 결과는 내가 나 자신과 맺고 있는 관계에서 큰 영향을 받습니다——자기 반성에 익숙한지, 스스로에게 얼마나 솔직한지, 페르소나에 함몰돼 있지는 않은지 등.
아울러 MBTI 검사의 전제 자체를 오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바뀐 업무 환경, 최근 맡은 프로젝트, 최근의 갈등,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등에 따른 의견과 태도의 변화, 내 ‘인생 철학’의 변동을 검사지에 적어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로 거대한 오해입니다. '현란한 아이디어와 기획력이 부질없다는 걸 깨닫고 그쪽 성향(N)이 사라졌다'는 역대급 기상천외한 글도 본 적이 있습니다. ‘P인 상사와 갈등을 오래 겪었더니 P라는 것이 혐오스럽다, J가 훌륭한 거구나’라고 생각해 관련 문항에 답을 극단적으로 몰아줬다고 자백하는 케이스도 봤구요. P/J라는 지표에 대한 내 의견이 바뀐 사실은 '내 성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자료입니다. 어떻게 보면 자기 성격을 검사하는 자리에서 생뚱맞게 MBTI 검사에 대한 메타 코멘트를 입력했다고도 볼 수 있죠 (저 예에서라면, P에 대한 혐오는 '내 성격을 P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게 하겠다'는 의지로 발현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검사의 결과를 은연 중에 조작하려 하는, 객관성 저해 요소가 되겠죠).
검사 결과가 널을 뛴다면, 원인은 위 3가지 범주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다: MBTI 자체가 불완전한 툴이거나, 내가 테스트를 한 ‘16뻬르소날리티 사이트(가칭)’의 간이 검사가 부실한 탓이거나, 아니면 검사를 한 나 자신이 ‘성찰’에 익숙지 않고 언어적 반성을 어려워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검사 결과가 일정합니다. 바뀐다 해도 방향성이 일관되게 틀어집니다. 그 경우 다이버전스의 이유를 더듬어 찾아가는 일이 비교적 쉽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결과값이 사방팔방💦튀는 경우입니다.
그런 케이스들에서 자주 들리는 후기는 크게 두 계열입니다.
1) 검사 결과가 변했으니 내 성격도 변했다(“최근 두 달간 성격이 세 번이나 바뀔 정도로 삶이 힘들었다”),
2) 성격이 이렇게 급격히 변하다니 역시 MBTI는 믿을 게 못 돼~(근데 여름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 테스트 중).
변한 것은 성격이 아니라 성격 검사지의 결과입니다. 한계가 없지 않은 검사 도구의 짝퉁 버전이 내 천연의 한계와 만나 화학 반응을 일으킨 것뿐입니다. 좌절하거나 희생양을 찾을 일은 아닙니다. 불굴의 강철 의지로 다시 일어나 어떻게든 내 참된 유형을 찾아야 합니다. 애초에 검사를 여러 번 하고 있다는 것은 뭔가를 열정적으로 찾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포기하긴 이릅니다.